1. 신파와 구파의 기원
- 민주당 창당 시기부터 민국당 출신의 구파와 새로 참여한 인사들로 구성된 신파 간의 이해관계 대립 존재
- 반독재 투쟁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으나, 잠재되어 있던 불씨
2. 제2공화국 수립 이후 갈등의 표면화
-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신파와 구파 간 권력 분배 문제가 대두됨
- 대통령 선출 과정에서 구파의 윤보선이 당선되었으나, 국무총리 인준 과정에서 갈등 심화
- 구파의 김도연 지명이 무산되고 신파의 장면이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불만 증대
3. 내각 구성을 둘러싼 대립 격화
- 장면 국무총리가 신파 위주로 내각을 구성하자 구파가 반발하며 별도의 교섭단체인 민주당구파동지회 결성
- 타협점을 찾아 신파 8명, 구파 5명, 무소속 2명으로 제2차 내각 구성했으나 구파는 신당 발족 선언
- 구파마저 협상파와 분당파로 분열되어 분당파는 신민당 창당, 협상파는 민주당에 합류
4. 신파 내 갈등과 잦은 개각
- 표면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신파 내에서도 소장파와 노장파의 대립 심화
- 소장파가 '신풍회'를 결성하여 노장파와 대립하고, 이를 봉합하기 위해 잦은 개각이 이루어짐
- 1961년 1월 제3차 내각, 5월 제4차 내각 구성에도 내분 지속
- 분열상을 보이던 민주당은 5·16 군사정변으로 결국 해산되고 말았음
5. 신구파 갈등이 제2공화국 몰락에 미친 영향
- 민주당 내 파벌간 권력 다툼으로 인해 정국 안정과 내각 운영에 실패
- 4·19 혁명 이후 높아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혼란만 가중시킴
- 결국 민주당 정부의 무능력한 모습은 군부 세력의 정치 개입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함
민주당 내 신파와 구파의 갈등은 단순한 당내 계파 간 권력 투쟁을 넘어, 제2공화국이라는 민주주의 실험의 실패로 이어진 중요한 요인이었다. 민주당은 독재에 맞선 투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나, 정작 집권 이후에는 내부 분열로 인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이후에도 한국 정당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